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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감옥 옥중도서관서… 구한말 개혁파들, 근대 민주국가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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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이상재 95주기… 후손이 기증한 ‘한성감옥 도서대출 장부’ 공개
1903년 1월… 1904년 8월 대출 기록
1902년 옥중도서관 만든 이승만과 ‘독립협회 활동’ 인사들 이름 담겨
美 독립운동사-프랑스 혁명 등… 서구 정치체제-사상 담은 책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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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한성감옥에 수감된 당시 죄수복을 입은 28세의 우남(왼쪽)과 53세의 월남(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독립기념관·이승만기념관 제공 


‘서대문감옥(옛 한성감옥)에는 진귀한 보물이 있다. 지난날 이승만 박사가 동지들과 같이 투옥됐을 때 옥중 도서관을 만들어 죄수들에게 나라 구하는 길을 가르쳤다. 나는 이곳에서 그의 손때와 눈물자국이 얼룩진 책을 보았다.’

백범 김구(1876∼1949)가 1911년을 회고하며 백범일지에 쓴 글이다. 당시 그가 투옥된 서대문감옥의 종로구치감은 구한말 한성감옥의 후신이었다. 대한제국 시기 개혁운동을 벌이다 한성감옥에 갇힌 우남 이승만(1875∼1965)을 포함한 지식인들은 옥중 도서관을 세우고 밤새 책을 읽었다.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선 이들은 감옥에서 어떤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을까.

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월남 이상재(1850∼1927) 서거 95주기를 맞아 그의 후손인 이공규 씨가 올 초 기증한 ‘한성감옥 도서대출 장부’를 공개했다. 1903년 1월부터 1904년 8월까지 수감자와 간수의 책 대출내역이 기록된 143쪽짜리 장부에는 우남, 월남 등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된 인사들의 이름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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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 1904년 한성감옥 옥중도서관의 도서대출 장부.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우남 이승만이 대출한 ‘천로역정’ 등이고 푸른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월남 이상재가 빌린 ‘태서신사’ 등이다. 
독립기념관·이승만기념관 제공 


대출목록에는 근대국가 정치체제와 사상을 담은 책들이 눈에 많이 띈다. 1903, 1904년 대출순위 1위(45회)에 오른 ‘유몽천자(유蒙千字)’는 미국 독립운동사를 소개한 책이다.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쓴 이 책은 우남과 백범, 월남 모두 읽었다. 2위는 프랑스 혁명 등 19세기 근대국가를 형성한 유럽사를 다룬 ‘태서신사(泰西新史)’.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의회정치 체제가 확립된 과정을 그린 저자 불명의 이 책도 우남과 백범, 월남이 탐독했다. 백범은 백범일지에 “태서신사를 읽을 때마다 이승만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고 무한한 느낌이 일었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월남은 서구 관점에서 유학(儒學)을 비판한 ‘경학불염정(經學不厭精)’을 수차례 읽었다. 이 책은 독일인 선교사 에른스트 파버가 썼다.

서구 근대국가의 정치체제를 소개한 ‘자서조동’(自西조東·에른스트 파버 지음)은 이동녕이 1903년 출옥하며 따로 챙겨갈 정도로 즐겨 읽은 책이다. 훗날 이동녕은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의장으로 ‘대한민국의 정체는 민주공화정’임을 선포하며 “우리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은 군주제를 부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요, 국민이 국가가 되는 민주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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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고종 폐위 음모에 연루돼 한성감옥에 투옥된 20대 청년 이승만은 1902년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250여 권을 소장한 옥중 도서관을 만들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수감시설로 바뀐 한성감옥에 ‘수감자 중 서적 보는 것을 청한 자가 있으면 필요한 것만 허락한다’는 규칙이 신설된 데 따른 것. 1902년 6월 투옥된 월남은 도서관 서기가 됐다. 임정 초대의장 이동녕,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이종일도 장부에 이름을 올렸다. 한성감옥이 근대개혁 정신을 싹틔운 배움의 장이 된 것이다.

윤소영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당대 지식인들은 감옥에서 서구 근대사상을 탐닉하며 건국의 뼈대를 구상했다”며 “한성감옥은 구한말 근대국가 수립을 모색하던 지식인들의 지적 탐구의 장이자, 독립운동가의 배출 통로로 기능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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